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아우구스투스의 조카) (문단 편집) === 가계 === 기원전 42년, '로마의 칼'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의 직계손 [[소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그의 후처 [[소 옥타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4남 4녀 중 유년기 이후에도 생존한 삼남매 중 둘째였다. 고향은 [[로마]]. 성인 이후에도 생존한 동복 삼남매 중 유일한 아들[* 아버지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누이까지 합쳐도 유일하게 성인이 될때까지 생존한 아들이었다.]로 위, 아래로는 누나 대(大) 클라우디아 마르켈라, 여동생 소(小) 클라우디아 마르켈라가 있었다. 훗날 어머니 옥타비아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재혼하면서 누나의 남편이 된 율루스 안토니우스는 그의 의붓형제가 됐다. 어머니 옥타비아는 재혼 후 이복여동생 둘을 낳았는데, 그 여동생들이 [[네로]]의 조모 대 안토니아, [[대 드루수스]]의 아내 [[소 안토니아]]다. 따라서 이부동생 소 안토니아의 두 아들 [[게르마니쿠스]]와 [[클라우디우스 1세]]는 그의 조카뻘이 된다. 어머니 옥타비아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종손녀였고, 외삼촌이 [[옥타비아누스]](훗날 아우구스투스), 외할머니는 [[폼페이우스]] 누나의 손녀이자 카이사르의 외조카 아티아였다. 하지만 아버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의 가계는 그 이상으로 대단했다. 할아버지 마르쿠스[* 종종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와 아버지 가이우스 모두 원로원 내에서 거물급 중진이었고, 포에니 전쟁의 영웅 마르켈루스의 직계손이었다. 또 조모는 명문귀족 유니우스 가 태생의 유니아인데다 이들의 가계에는 또 다른 포에니 전쟁의 전설 파비우스의 피도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기원전 88년생으로 기원전 50년 집정관을 지낸 원로원 내 거물급 인사로, [[키케로]]의 오랜 친구였다. 첫 아내와 사별한 이후, 카이사르 누나 율리아의 외손녀 옥타비아와 재혼했지만, 원칙을 강조한 원로원파인 탓에 카이사르의 두번째 집정관 선거 출마를 반대한 주요 원로원 의원 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전이 벌어진 직후, 자신의 형 마르쿠스와 다른 조카들과 달리 카이사르에게 칼을 직접 겨누지 않았고,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기원전 49년 이탈리아를 점령한 카이사르에게 용서를 받았고, 9년 뒤인 기원전 40년 5월 병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